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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_청년 쓸모 도전기 (허경심)

2026-03-31
조회수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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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루리 장편소설,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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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쓸모 도전기


TV 화면 속에서 해설사와 관중들이 열광한다. 링 위의 권투 선수가 비틀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상대방 선수 또한 기진맥진이다. 경기를 치러내야 하는 링 위는 흡사 전쟁터 같다. 링 위에 선수처럼 치열하게 자신과 매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직장을 다니다가 번아웃이 와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구직활동 중인 청년과, 취업과 아르바이트 하나 구하지 못한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단정 짓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경험, 그리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어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본인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 줄 수도 있어 불안과 조심성이 앞선다는 그들은 모두 은둔 고립의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다. 그들은 링 위에서도 아프니까 청춘인 것이고, 그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섯 명의 청년은 서로 다른 지역이고 관심사도 달랐다. 그들 모두 플로깅 동아리 회원들이었다.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는지 눈빛을 교환하며 지금 안부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들에게 플로깅은 주워도 다시 생기는 쓰레기를 보면서, 나의 개인적인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단다. 치워도 티 안나는 집안일처럼 쓰레기를 아무리 주워도 다시 쌓여가는 긴 해안가를 보면서 잠시 까마득해지기도 한단다. 하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새끼 펭귄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함께 했던 「긴긴밤」의 노든처럼, 청년들은 초록색으로 일렁이는 지평선을 찾아보기로 했다. 노든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졌던 궁금했던 그 답을 안전한 고아원이 아닌 세상 바깥에서 찾기로 결심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든이 뿔 사냥꾼으로부터 가족을 잃고 자신의 뿔도 잘렸던 것처럼 청년들에게도 가끔은 뿔 사냥꾼이 그들의 기회를 앗아가기도 할 것이다. 노든이 이런 불행속에서도 사막에서 바다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친구들에게서 연대와 사랑을 배운다. 노든은 친구들과 함께 긴 밤을 보내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바다처럼 까마득한 삶은 순간순간 행복이었다고 회상한다.

 

다섯 명의 청년들은 자신의 상처를 끝끝내 사랑하기 위하여 플로깅으로 자신의 쓸모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새끼 펭귄이 노든을 만나 그에게 받은 사랑만큼 단단해졌듯, 청년들이 쓰레기를 주우며 마주한 바다와 바람과 그리고 친구들도 서로 만나서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지나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누군가도 해초 내음과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을 만나 상처가 회복되고 치유되어 다행으로 여기게 될 거라고 코끼리 고아원의 할머니가 얘기해 줄 것 같다.



오승주 작가의 말부주


청년들의 삶을 링 위의 권투 선수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입니다. 링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고, 선수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모든 힘을 쥐어짜 승리하는 것만이 생존하는 길이며, 패배자를 밟고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료는 없습니다. 눈앞에 적을 상대할 뿐이죠. 권투 선수는 어떻게 연대를 배울 수 있을까요? 링 위에 선 청년에게 잔인한 운명은 패배자에게 집중되는 차가운 시선과 연대할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 청년은 마치 링에서 패배한 선수처럼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견뎌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같은 처지이기에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누비는 해안은 링 위가 아니라서 편안합니다. 언젠가 세상이라는 링 위에 다시 서여겠지만 도무지 염두가 나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펭귄알을 옮기는 노든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마치 청년이 한 명 더 찾아온 듯한 효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는 그들에게 회복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글에 사용된 상징과 소재가 썩 어울리지만 독자에게는 다소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 TV 화면 속에 권투 시합을 따라오게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권투를 안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또는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의미를 가진 ‘핍진성’이 요구됩니다. 독자가 부담없이 익숙하게 따라 올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바다’와 ‘해초 내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누구나 바다를 한 번쯤은 보았거나 상상했을 테니까요. <긴긴밤>과 연결되는 부분도 갑작스럽게 등장한 느낌이 듭니다. ‘플로깅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함께 바라본 수평선을 노든도 치쿠와 함께 보고 있었겠지?’ 이렇게 접점을 만들어줘야 책이 자연스럽게 글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링 위의 권투 선수, 플로깅하는 청년, 노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면 글쓴이의 뜻이 잘 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 한 번 고민해주기를 청합니다. <청년 쓸모 도전기>라는 청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 것일 텐데, 독자들은 글쓴이가 청년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쓸모 엿보기>라든지, 지근거리에서 청년들의 성장 모습을 바라본다는 암시를 해주지 않으면 독자는 속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목과 시작 부분이 어깨에 살찍 힘이 들어가 있는데, 독자의 무장을 해제해주는 자연스러운 도입과 제목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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