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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_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홍지선)

2026-07-28
조회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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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에드거 앨런 포 소설, 열린책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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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홍지선)

  

 추리소설치고는 서론이 참 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요즘 말하는 ‘빌드업’이라는 걸까?

 이러다가 사건에 들어가기도 전에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인내의 열매는 달콤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서두에 등장한 ‘분석가’에 대한 긴 설명은 사건 자체보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과 태도를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였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파리의 4층 건물에서 발견된 모녀의 엽기적인 사체들. 경찰은 물론 목격자들의 진술조차 서로 어긋나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이 혼란을 풀어내는 사람은 경찰이 아니다. 특별한 권한도 보수도 없이 오직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사건에 뛰어든 인물, 바로 오귀스트 뒤팽이다. 뒤팽은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는 경찰도, 유가족도, 사건 관계자도 아니다. 이 장면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뒤팽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거잖아?’

 뒤팽의 오지랖을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자원봉사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기심이건 오지랖이건 대가를 받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자원봉사 그 자체인 것이니까. 뒤팽을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니 훨씬 친근감이 느껴졌다.


 자원봉사 역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에 스스로 다가가는 행위다. 대가나 명예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도 뒤팽의 행동과 연결된다.

뒤팽의 추리는 남들이 지나치는 사소한 단서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집요한 관찰에서 나온다. 그는 목격자들의 엇갈린 증언 하나하나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엇갈림’ 자체에서 실마리를 찾아낸다. 봉사 현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은 해결책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세심히 관찰하고 경청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관찰을 통해 그 사람과 일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주변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을 관찰한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주위로부터 ‘오지랖이 넓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이게 바로 자원봉사자 뒤팽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뒤팽에게는 혼자만의 관찰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연결이 있었다. 신뢰 속에서 나누어진 관찰은 더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팽은 관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뒤팽은 집요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부분을 보려고 애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관찰’에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는 ‘분석’이 더해질 때 비로소 현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뒤팽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자질은 ‘자유로움’이었다. 파리 경찰이 사건에 접근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뒤팽은 자유롭고 가볍고 풍부하다. 나는 어쩌면 뒤팽을 닮고 싶은 파리 경찰이다. 진실을 밝히고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보다 ‘해야 할 의무’가 무겁기에 끝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뒤팽을 따라가려고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항상 끝이 좋지 않으니까. 그것보다는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먼저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 뒤팽 같은 천재적인 능력은 없을지라도,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람들과 연결하며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부분들이 색이 바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술만큼은 뒤팽에게 배우고 싶다.


오승주 작가의 말부주

 

소설은 작가에 의해서 탄생하지만,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 독자의 것이 됩니다. 창작하는 상상력과 읽는 상상력은 별개의 영역일 뿐 아니라, 독자에게는 ‘해석’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자 자신의 삶과 일상에 소설을 연관시킬 줄 아는 해석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소설 읽기’라는 칼을 부지런히 벼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 글은 소설작품을 어떻게 독자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뒤팽을 자원봉사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원봉사자와 자원봉사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자원봉사 스승’으로 임명한 건 이 글의 가장 빛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리 경찰과 비교하면서도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고 담담하게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이것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자원봉사 현장 근무자의 성장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자원봉사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관점입니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을 이런 식으로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자신이 뒤팽보다 파리 경찰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 아니라, 파리 경찰과는 다르면서도 뒤팽을 닮은 요소들을 제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SWOT 분석(SWOT analysis)을 하듯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소설 읽기에서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서 저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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