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2021년 11월)
"자원봉사가 상처가 될 때와 치유가 될 때"
-오승주 작가-
『이상한 할머니』/ 아델하이트 다히메네 (글),하이데 슈퇴링거 (그림), / 느림보 / 2006

[자원봉사가 상처가 될 때]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자원봉사자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주로 자원봉사자 분들이 현장에서 겪는 경험이나 고민을 공유하여 함께 생각해보는 방식입니다. 그 중에는 상처 받은 일도 있습니다.
가장 생각나는 일은 일명 '수요처'라고 부르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겪는 대우에 관한 것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도 문제가 되었지만 자원봉사자를 저렴한 또는 무료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일이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러 갔던 한 봉사자 분은 현장의 직원이 자신을 '알바생' 다루듯 해서 불편하고 속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나름 지휘 계통을 통해서 전달을 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오랫동안 알바생처럼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자원봉사자다' 하고 당당하게 밝히고 노동력을 다루듯이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누군가의 부하직원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부하직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잘못된 거이지 결코 자원봉사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죠.
이건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이 글에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지만 이 말을 들은 자원봉사자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평생 이런 말을 해준 분이 없었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한편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경우가 그 자원봉사자 한 분에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들어서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취급을 받았었고, 지금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문화를 뿌리뽑지 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보내는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상처를 줄까요?
[자원봉사가 치유가 될 때]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 몹시 침울한 표정의 소녀는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실뜨기 놀이를 하다 양동이에 함께 발을 담그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상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녀의 표정은 한결 밝아지고 마지막에는 미소까지 보입니다.
그림책 『이상한 할머니』를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마음속으로는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원래 몸에 난 상처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현대사회로 오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마음의 상처로 뜻이 넓어진 심리학 용어입니다. 다행히 '트라우마'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없었습니다. 이 말이 유명할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업 날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깨진 그릇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그러는 일이 적지만 예전에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기가 예사였으니까요. 그릇이 싱크대에서 추락하며 와장창 깨지면 부엌에서 거실까지 파편이 튀기도 합니다. 정성스레 파편을 추적해서 제거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밟아서 또 다른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될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주변을 물티슈로 닦아 내고, 설마 하는 곳까지 물티슈를 갖다 댑니다. 그리고 깨진 그릇 파편은 어김 없이 설마 하는 곳까지 날아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깨진 파편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마음 속의 그릇이 어디에서 어떻게 깨졌는지 세심히 되짚지 않으면 그 위에 시간의 먼지가 쌓여서 결국 치유의 골든 타임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깨진 그 순간 파편이 튀었을 만한 지점을 폭넓게 역추적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롸 속도로 그릇이 깨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파편이 어디에 남아 있을지 찾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원봉사센터나 수요처의 경우 자원봉사자가 상처를 입었음직한 순간이 있을 수 있고 업무구조 상에서 상처를 줄 만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에게 유리조각이 될 수 있는 원인들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자원봉사의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 소녀를 자원봉사자라고 한다면 자원봉사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한 할머니는 '주사위 놀이에서는 이겼니?' '시끄러운 오빠들은 어디 갔니?' 같은 '이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상한 질문의 정체는 철저히 소녀의 입장에서 질문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소녀에 대해서 주변인들에게 많이 질문하고 소녀의 상황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소녀가 어떻게 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인지 많이 고민했던 흔적이 질문에 담겨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생각한다면 자원봉사는 하나의 기분 좋은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한 할머니는 자신이 늙어서 기운이 없으니 놀이를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소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만약 앞에 소개했던 자원봉사자가 갔던 수요처에서 수요처의 상황(또는 열악한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어쩌면 자원봉사 외에도 이런 저런 부수적인 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요?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보태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처에서 수요처의 상황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면 자원봉사자와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는 존중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자원봉사자가 모처럼 찾아온 귀중한 손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만남이 어쩌면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자원봉사자에게 잘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원봉사자에 대해서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달라는 말입니다.
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본 콘텐츠는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주시자원봉사센터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된
'자원봉사 칼럼' 입니다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 보러가기
(2021년 11월)
"자원봉사가 상처가 될 때와 치유가 될 때"
-오승주 작가-
『이상한 할머니』/ 아델하이트 다히메네 (글),하이데 슈퇴링거 (그림), / 느림보 / 2006
[자원봉사가 상처가 될 때]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자원봉사자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주로 자원봉사자 분들이 현장에서 겪는 경험이나 고민을 공유하여 함께 생각해보는 방식입니다. 그 중에는 상처 받은 일도 있습니다.
가장 생각나는 일은 일명 '수요처'라고 부르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겪는 대우에 관한 것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도 문제가 되었지만 자원봉사자를 저렴한 또는 무료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일이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러 갔던 한 봉사자 분은 현장의 직원이 자신을 '알바생' 다루듯 해서 불편하고 속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나름 지휘 계통을 통해서 전달을 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오랫동안 알바생처럼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자원봉사자다' 하고 당당하게 밝히고 노동력을 다루듯이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누군가의 부하직원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부하직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잘못된 거이지 결코 자원봉사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죠.
이건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이 글에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지만 이 말을 들은 자원봉사자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평생 이런 말을 해준 분이 없었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한편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경우가 그 자원봉사자 한 분에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들어서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취급을 받았었고, 지금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문화를 뿌리뽑지 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보내는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상처를 줄까요?
[자원봉사가 치유가 될 때]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 몹시 침울한 표정의 소녀는 이상한 할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실뜨기 놀이를 하다 양동이에 함께 발을 담그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상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녀의 표정은 한결 밝아지고 마지막에는 미소까지 보입니다.
그림책 『이상한 할머니』를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마음속으로는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원래 몸에 난 상처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현대사회로 오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마음의 상처로 뜻이 넓어진 심리학 용어입니다. 다행히 '트라우마'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없었습니다. 이 말이 유명할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업 날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깨진 그릇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그러는 일이 적지만 예전에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기가 예사였으니까요. 그릇이 싱크대에서 추락하며 와장창 깨지면 부엌에서 거실까지 파편이 튀기도 합니다. 정성스레 파편을 추적해서 제거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밟아서 또 다른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될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주변을 물티슈로 닦아 내고, 설마 하는 곳까지 물티슈를 갖다 댑니다. 그리고 깨진 그릇 파편은 어김 없이 설마 하는 곳까지 날아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깨진 파편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마음 속의 그릇이 어디에서 어떻게 깨졌는지 세심히 되짚지 않으면 그 위에 시간의 먼지가 쌓여서 결국 치유의 골든 타임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깨진 그 순간 파편이 튀었을 만한 지점을 폭넓게 역추적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롸 속도로 그릇이 깨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파편이 어디에 남아 있을지 찾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원봉사센터나 수요처의 경우 자원봉사자가 상처를 입었음직한 순간이 있을 수 있고 업무구조 상에서 상처를 줄 만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에게 유리조각이 될 수 있는 원인들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자원봉사의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 소녀를 자원봉사자라고 한다면 자원봉사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한 할머니는 '주사위 놀이에서는 이겼니?' '시끄러운 오빠들은 어디 갔니?' 같은 '이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상한 질문의 정체는 철저히 소녀의 입장에서 질문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소녀에 대해서 주변인들에게 많이 질문하고 소녀의 상황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소녀가 어떻게 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인지 많이 고민했던 흔적이 질문에 담겨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생각한다면 자원봉사는 하나의 기분 좋은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한 할머니는 자신이 늙어서 기운이 없으니 놀이를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소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만약 앞에 소개했던 자원봉사자가 갔던 수요처에서 수요처의 상황(또는 열악한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어쩌면 자원봉사 외에도 이런 저런 부수적인 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요?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보태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처에서 수요처의 상황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면 자원봉사자와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는 존중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자원봉사자가 모처럼 찾아온 귀중한 손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만남이 어쩌면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자원봉사자에게 잘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원봉사자에 대해서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달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