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2021년 6월)
"제주마을에서 자라는 마음으로 제주책을 읽는다"
-김신숙 시인-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 김동윤 / 한그루 / 2022

여든이 넘어도 귀가 밝은 4.3 생존자 할머니를 채록한 적이 있다. 옷귀(의귀리 옛이름) 노인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대부분 소리를 잘 듣지 못하지만, 자신은 4.3 당시 남편을 잃은 어머니를 닮아 귀가 밝다고 환하게 웃었다. 4.3 생존자 할머니들의 이후 인생은 어떠했는지 듣기 위해 찾아간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마을 풍경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백 년 전 마을 이야기까지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옷귀 할머니를 만난 후로 그 마을을 지날때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옷귀 마을이 귓바퀴처럼 아늑하다.
구술 채록을 하며 특히 할머니가 어린 시절 듣고 보았던 그 마을의 이야기들이, 백 년 전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신비로웠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이, 생성소멸의 한계를 지닌 생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땅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어지며 그 마을의 자연과 함께 신성을 지니는 신비로운 기운이 된다는 나만의 신당 같은 신뢰감이 생겼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산에 숨었다가 아기였던 동생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아 마을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잡혀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육지 형무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후 아버지를 볼 수는 없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도 산으로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4.3 평화공원 행불자비석에 모시고 있다.
2021년 제주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를 쓴 김동윤 평론가의 어머니 이야기다. 김동윤 평론가는 의귀리 출생으로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제주 문학을 시대와 함께 읽어주는 안내자로, 제주 문학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평론가다.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정리한 그의 글을 읽으며 귀한 귀가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안도감과 귀함은 김동윤 평론가의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의 힘으로 완성된 것 같다.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해방을 맞았는데, 해방 후 담임이던 여교사가 가르쳐 준 한글동요를 기억해 불러 줄 정도로 총명했다. 그 노래를 누가 지은 것일까. 해방된 나라의 여교사 표정은 어떠하였을까. 할머니 이야기 하나 하나가 너무 귀했는데, 그중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바로 김동윤 평론가의 총각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밤이 어두룩했는데 집으로 전화가 온 거야. 마을 어디로 태우러 오라고. 겁이 덜컥 났지." 그 곳은 그 마을에서 가장 원통한 죽음이 괴인 곳이다. 속냉이골. 그곳은 4.3 당시 국방경비대에 희생된 영령들의 유골이 방치된 곳이다. 당시 의귀초등하교에는 남원읍 중산간 마을의 수많은 주민들을 용공 분자로 몰려 수용되어 있었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들이 초등학교를 습격해 수용된 주민들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주둔군의 막강한 힘에 밀려 희생되고 말았다. 이때 희생된 무장대들은 근처 밭에 버려졌고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곳에 묻혔지만 내내 돌보는 사람 없이 덤불 속에 방치되어 왔다.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는 자신의 젊은 아들이 원통한 죽음이 괴인 근처를 다니는 행동이 걱정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들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잠깐 등장하는 김동윤 평론가의 이야기, 제주문학을 자신의 마을로 삼고, 제주 문학의 이야기를 한계 없이 잇기 위해 노력하는 김동윤 평론가의 젊은 시절 각오가 윤슬처럼 빛난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당시 앞으로 제주 4.3 문학만은 빠지지 않고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는 김동윤 평론가. 지금은 4.3 문학만이 아니라 그 정신에 바탕을 둔 제주작가들을 두루 안내하는 명실상부 제주문학오름 나그네가 되었다.
그 유명한 '오름 나그네'라는 책처럼 제주작가들의 작품의 의미를 면면히 바라보는 역할을 한다. 감동윤 평론가가 읽고 평론한 제주문학작품은 누군가에게 다시 읽힐, 다시 등산할 필요가 있는 정상의 가치를 앋게 된다. 제주의 오름들은 저마다의 높낮이로 수평적인 풍경을 만든다.
그런 세계를 바라보는 서정으로 나를 비롯한 또 다음 세대의 제주 작가들은 세상을 감시하는 빗개가 되기도 하고, 한 번도 본적 없는 미얀마의 봄비를 느끼고, 평생 가보지 못할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잎을 상상할 것이다. 그들은 목마른 고통을 가시처럼 바늘처럼 공감의 감각으로 꿸 것이다.
한 마을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일은 귀한 일이다. 그럴 가능성이 적어진 시대에,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 지역의 작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독자지만 작가와 함께 신비로운 기운을 지닌 스스로의 신당을 갖는 일이다. 큰 광광지가 되지 않을지언정 그 지역의 풀과 벌레, 누락된 생을 엮어내겠다고 작심한 지역 출판사들이 있다.
제주라는 마을에서 자라, 제주 작가의 책을 읽어 나가는 마음은, 우리 마을의 마음에 대한 귀한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주 책을 읽는 마음은 앞선 마음, 선한 마음, 자원봉사의 마음과 뜻과 결이 같다고 얘기하고 싶다.
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본 콘텐츠는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주시자원봉사센터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된
'자원봉사 칼럼' 입니다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 보러가기
(2021년 6월)
"제주마을에서 자라는 마음으로 제주책을 읽는다"
-김신숙 시인-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 김동윤 / 한그루 / 2022
여든이 넘어도 귀가 밝은 4.3 생존자 할머니를 채록한 적이 있다. 옷귀(의귀리 옛이름) 노인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대부분 소리를 잘 듣지 못하지만, 자신은 4.3 당시 남편을 잃은 어머니를 닮아 귀가 밝다고 환하게 웃었다. 4.3 생존자 할머니들의 이후 인생은 어떠했는지 듣기 위해 찾아간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마을 풍경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백 년 전 마을 이야기까지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옷귀 할머니를 만난 후로 그 마을을 지날때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옷귀 마을이 귓바퀴처럼 아늑하다.
구술 채록을 하며 특히 할머니가 어린 시절 듣고 보았던 그 마을의 이야기들이, 백 년 전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신비로웠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이, 생성소멸의 한계를 지닌 생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땅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어지며 그 마을의 자연과 함께 신성을 지니는 신비로운 기운이 된다는 나만의 신당 같은 신뢰감이 생겼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산에 숨었다가 아기였던 동생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아 마을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잡혀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육지 형무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후 아버지를 볼 수는 없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도 산으로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4.3 평화공원 행불자비석에 모시고 있다.
2021년 제주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를 쓴 김동윤 평론가의 어머니 이야기다. 김동윤 평론가는 의귀리 출생으로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제주 문학을 시대와 함께 읽어주는 안내자로, 제주 문학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평론가다.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정리한 그의 글을 읽으며 귀한 귀가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안도감과 귀함은 김동윤 평론가의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의 힘으로 완성된 것 같다.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해방을 맞았는데, 해방 후 담임이던 여교사가 가르쳐 준 한글동요를 기억해 불러 줄 정도로 총명했다. 그 노래를 누가 지은 것일까. 해방된 나라의 여교사 표정은 어떠하였을까. 할머니 이야기 하나 하나가 너무 귀했는데, 그중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바로 김동윤 평론가의 총각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밤이 어두룩했는데 집으로 전화가 온 거야. 마을 어디로 태우러 오라고. 겁이 덜컥 났지." 그 곳은 그 마을에서 가장 원통한 죽음이 괴인 곳이다. 속냉이골. 그곳은 4.3 당시 국방경비대에 희생된 영령들의 유골이 방치된 곳이다. 당시 의귀초등하교에는 남원읍 중산간 마을의 수많은 주민들을 용공 분자로 몰려 수용되어 있었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들이 초등학교를 습격해 수용된 주민들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주둔군의 막강한 힘에 밀려 희생되고 말았다. 이때 희생된 무장대들은 근처 밭에 버려졌고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곳에 묻혔지만 내내 돌보는 사람 없이 덤불 속에 방치되어 왔다.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는 자신의 젊은 아들이 원통한 죽음이 괴인 근처를 다니는 행동이 걱정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들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잠깐 등장하는 김동윤 평론가의 이야기, 제주문학을 자신의 마을로 삼고, 제주 문학의 이야기를 한계 없이 잇기 위해 노력하는 김동윤 평론가의 젊은 시절 각오가 윤슬처럼 빛난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당시 앞으로 제주 4.3 문학만은 빠지지 않고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는 김동윤 평론가. 지금은 4.3 문학만이 아니라 그 정신에 바탕을 둔 제주작가들을 두루 안내하는 명실상부 제주문학오름 나그네가 되었다.
그 유명한 '오름 나그네'라는 책처럼 제주작가들의 작품의 의미를 면면히 바라보는 역할을 한다. 감동윤 평론가가 읽고 평론한 제주문학작품은 누군가에게 다시 읽힐, 다시 등산할 필요가 있는 정상의 가치를 앋게 된다. 제주의 오름들은 저마다의 높낮이로 수평적인 풍경을 만든다.
그런 세계를 바라보는 서정으로 나를 비롯한 또 다음 세대의 제주 작가들은 세상을 감시하는 빗개가 되기도 하고, 한 번도 본적 없는 미얀마의 봄비를 느끼고, 평생 가보지 못할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잎을 상상할 것이다. 그들은 목마른 고통을 가시처럼 바늘처럼 공감의 감각으로 꿸 것이다.
한 마을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일은 귀한 일이다. 그럴 가능성이 적어진 시대에,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 지역의 작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독자지만 작가와 함께 신비로운 기운을 지닌 스스로의 신당을 갖는 일이다. 큰 광광지가 되지 않을지언정 그 지역의 풀과 벌레, 누락된 생을 엮어내겠다고 작심한 지역 출판사들이 있다.
제주라는 마을에서 자라, 제주 작가의 책을 읽어 나가는 마음은, 우리 마을의 마음에 대한 귀한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주 책을 읽는 마음은 앞선 마음, 선한 마음, 자원봉사의 마음과 뜻과 결이 같다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