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2021년 8월)
"처음이라는 신비로움"
-김신숙 시인-
『여기에선 네 안에 따뜻한 바람이 불거야』/ 클로이 / 위즈덤하우스 / 2012

내가 자원봉사를 하는 작은도서관에는 봉사를 처음 오는 중학생이 많다. 어린이 시절에는 책을 읽던 도서관인데, 청소년이 되어서는 자원봉사를 와 낯설어하면서도 무엇인가 신비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따뜻한 눈빛이다. 따뜻한 바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클로이의 첫 책을 펼치면 신비로운 제주도의 풍경이 펼쳐진다. 책장을 걷으면 제주 햇살이 쏟아진다. 노을이 가득한 그림이라도, 밤을 담은 풍경이라도 클로이의 그림은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을 사진처럼 간직하는 것이 아니다. 앨범에 담아둔 풍경은 눈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마음에 담아둔 풍경은 빛을 담고 남아 있다. 기억과 마음속에 담아 둔 풍경은 물리적인 공간을 더 많이 기억해야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가 스스로 헤아린 생각의 일조량이 많아야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다.
나의 마음 속에는 나의 날씨가 있어서, 나의 마음은 나의 빛과 같아서, 클로이의 책『여기에선 네 안에 따뜻한 바람이 불거야』 를 펼치면 제주의 신비로운 풍경 위로 나의 마음들이 내려앉는다.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들 중 작가를 닮은 소녀는 어떤 소녀일까. 클로이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여자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아빠다.
클로이를 처음 만난 건 서귀포 작은 책방에서 시작한 시창작 모임이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그가 애월에서 한 시간을 달려왔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말수가 없었고, 투명한 붓칠 하듯 조용히 웃기만했다. 지금에서야 그 웃음이 시 공부를 책방을 감돌던 '따뜻한 바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클로이는 유명한 북커버 디자이너이다. 클로이는 짧은 시를 가지고 왔다. 그 시들 중 일부는 이 책에 실려 있는데, 그가 가지고 왔으나 책에 실리지 않은 시가 있어 소개한다. 나는 이 시가 너무 좋다. 제목은 '처음 시', 그 시를 읽으면 나처럼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처음 시
클로이
초등학교 3학년 인원수가 모자란 학급
누구는 미술, 누구는 공예, 누구는 수학경시
난 학급 뒤편 문고에서 맨날 학습만화 잘 본다고 백일장
집에 가서 이야기하니 우리엄마
'우리아들 최고네' 좋아라
성주에서 김천까지 유치원동생 손잡고
버스만 세 번,가는데 세 시간
김천 남산공원 찌르는 햇볕
올라가는데만 110계단
힘들다고 내동생 찡얼찡얼
등록하고 받은 200자 워고지
한 번도 써 본적 없는 시
'건강 공부 독서'
시제를 받아 적은 아이들
다른 아이들 색색이 예쁜 돗자리
무릎까지 끌어올린 하얀 양말
예쁜 도시락상자, 예쁜 신발
우리엄마 새벽에 싼 김밥 신문지 펴고
동생 오줌 뉘러 가고
나 혼자 공원 구석 낯선 땀이 주루룩
원고지 붉게 물들고 하나 둘 내려가는 아이들
뭐라도 써야겠다고 쓴 처음 시
던지듯 제출하고 내려가는 길
차멀미하고 토하던 동생
부끄러운 내 처음 시
그는 올해 처음으로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나 한번도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클로이는 처음 시를 쓰던 날철머 설레는 마음으로 왕복 두 시간을 오가며 초등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종종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사 주면서. 기름값 빼면 남는 게 많지 않은 강사비인데, 아이들 가르치는 클로이를 보면 자꾸 그가 쓴 "처음 시"가 떠오른다.
클로이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이것을 할 거예요. 자 시작해 볼게요." 하며 작업을 바로 들어간다. 보통은 이런 설명 저런 설명을 구구절절하며 수업을 진행하는데, 클로이 수업은 시원한 수업 속으로 어린이들이 바로 바로 수업의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간다. 보통은 도서관 강의실 수업이라 떠드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혼을 내지만 클로이는 일관된 햇볕정책이다. 따뜻한 옷을 짤 양을 키우는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목동 클로이, 어린이들이 클로이를 따른다.
이제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 모든 일에는 처음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클로이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기쁨이던지, 고역이던지 그 일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을 항상 따뜻하고 쾌청하게 바라보는 선생님일 것! 그런 수업이기에 "뭐라도 그려야겠다"고 억지로 "던지듯 제출하"는 작품은 찾아 볼 수 없다.
아마도 멀리 있어도 클로이 선생님 수업이라면 "차멀미하고 토"하면서도 갈 것 같다. 어린이들은 활짝이지만 클로이선생님은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 하는 수업을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처음하는 일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마음속까지 그 마음이 닿아 일렁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기분을 신비롭다고 말한다.
자원봉사와 문학과의 만남
'자원봉사 칼럼'💕
본 콘텐츠는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주시자원봉사센터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된
'자원봉사 칼럼' 입니다
온라인 자원봉사 뉴스레터 보러가기
(2021년 8월)
"처음이라는 신비로움"
-김신숙 시인-
『여기에선 네 안에 따뜻한 바람이 불거야』/ 클로이 / 위즈덤하우스 / 2012
내가 자원봉사를 하는 작은도서관에는 봉사를 처음 오는 중학생이 많다. 어린이 시절에는 책을 읽던 도서관인데, 청소년이 되어서는 자원봉사를 와 낯설어하면서도 무엇인가 신비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따뜻한 눈빛이다. 따뜻한 바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클로이의 첫 책을 펼치면 신비로운 제주도의 풍경이 펼쳐진다. 책장을 걷으면 제주 햇살이 쏟아진다. 노을이 가득한 그림이라도, 밤을 담은 풍경이라도 클로이의 그림은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을 사진처럼 간직하는 것이 아니다. 앨범에 담아둔 풍경은 눈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마음에 담아둔 풍경은 빛을 담고 남아 있다. 기억과 마음속에 담아 둔 풍경은 물리적인 공간을 더 많이 기억해야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가 스스로 헤아린 생각의 일조량이 많아야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다.
나의 마음 속에는 나의 날씨가 있어서, 나의 마음은 나의 빛과 같아서, 클로이의 책『여기에선 네 안에 따뜻한 바람이 불거야』 를 펼치면 제주의 신비로운 풍경 위로 나의 마음들이 내려앉는다.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들 중 작가를 닮은 소녀는 어떤 소녀일까. 클로이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여자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아빠다.
클로이를 처음 만난 건 서귀포 작은 책방에서 시작한 시창작 모임이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그가 애월에서 한 시간을 달려왔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말수가 없었고, 투명한 붓칠 하듯 조용히 웃기만했다. 지금에서야 그 웃음이 시 공부를 책방을 감돌던 '따뜻한 바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클로이는 유명한 북커버 디자이너이다. 클로이는 짧은 시를 가지고 왔다. 그 시들 중 일부는 이 책에 실려 있는데, 그가 가지고 왔으나 책에 실리지 않은 시가 있어 소개한다. 나는 이 시가 너무 좋다. 제목은 '처음 시', 그 시를 읽으면 나처럼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나 한번도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클로이는 처음 시를 쓰던 날철머 설레는 마음으로 왕복 두 시간을 오가며 초등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종종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사 주면서. 기름값 빼면 남는 게 많지 않은 강사비인데, 아이들 가르치는 클로이를 보면 자꾸 그가 쓴 "처음 시"가 떠오른다.
클로이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이것을 할 거예요. 자 시작해 볼게요." 하며 작업을 바로 들어간다. 보통은 이런 설명 저런 설명을 구구절절하며 수업을 진행하는데, 클로이 수업은 시원한 수업 속으로 어린이들이 바로 바로 수업의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간다. 보통은 도서관 강의실 수업이라 떠드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혼을 내지만 클로이는 일관된 햇볕정책이다. 따뜻한 옷을 짤 양을 키우는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목동 클로이, 어린이들이 클로이를 따른다.
이제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 모든 일에는 처음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클로이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기쁨이던지, 고역이던지 그 일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을 항상 따뜻하고 쾌청하게 바라보는 선생님일 것! 그런 수업이기에 "뭐라도 그려야겠다"고 억지로 "던지듯 제출하"는 작품은 찾아 볼 수 없다.
아마도 멀리 있어도 클로이 선생님 수업이라면 "차멀미하고 토"하면서도 갈 것 같다. 어린이들은 활짝이지만 클로이선생님은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 하는 수업을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처음하는 일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마음속까지 그 마음이 닿아 일렁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기분을 신비롭다고 말한다.